DECEMBER 2023
당신은 누구인가
예술가 차계남이다.
무명의 작가에서 어느 순간 검은색에 마술사라 불린다
아마 처음 검은색은 썼을 때가 1987년이지 싶다. 색은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했고 검은색이란 침묵과 조용한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검은색의 옷들을 입는 걸 좋아하고 그렇게 불러줘서 오히려 좋기만 하다.
붓으로 한지에 반야심경 불교 경전 구절을 쓴 뒤 작업한다 들었다
내 입체 작품의 크기는 보통 집 한 채 크기 정도 된다. 경전 구절을 길게 붓으로 쓴 뒤, 다시 잘라 파괴하고 그것들을 또 한 번 실로 꼬아 세 가지 점과 선과 면으로 재창조를 시키는 방식이다. 반야심경에서 우주의 삼라만상을 통해 가르침을 얻었다. 모든 것이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뫼비우스와 같다.
근데 또 내 종교를 물어본다면 불교인은 아니다. 하하
실제로 번뇌가 사라지던가
아침 4시 반에 일어나서 세수만 하고 곧장 작업장으로 내려간다. 하루 종일 실만 꼬고 있기 때문에 정말 아무 잡념이나 생각 자체가 없어진다. 주변 사람들이 그것이 고행의 길이고 수행자의 모습이라더라. 스님들이 목탁을 뚜드리는 거와 같다 생각해달라.
점과 선. 멈추고 이어짐에 동양철학의 바탕을 둔 건가
그렇지. 모든 것들이 점에서 시작되고 선이 되지.
본인에게 예술은 치유의 연속인가 아픔의 연속인가
갈수록 몸도 허리도 아프고 육체적으로 고통이 크다.
하지만 작품이 완성될 때의 그 성취감은 아픔 따위에 비교할 수 없다.
추구하는 단색과 모던을 사용한 미래의 작품은 지금과 어떤 점이 달라지나
앞으로는 더 검어질 거다.
예전에 사용했던 사이잘 마(Sisal Hemp)는 버버리 트렌치코트 색깔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 살색. 하지만 나는 말했다시피 검은색만 입는다.
만약 먹의 색깔이 흰색이었거나 한지가 빨간색이었다면
그럼 절대 안 썼지. 여태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색을 써보라는 요구며 충고가 많았지만 딱 말했다.
"다른 데 가서 알아보슈."
내 작품에 간단한 색을 입히면 무조건 팔리는걸 알고 있지만 그건 유혹이고 고객을 위한 장사꾼이 되는 거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예술을 할 뿐이다.
일종의 일탈이나 해방감으로 다른 컬러를 사용할 이벤트는 추호에도 없는가
있지. 대신 검은색 안에 숨어있겠지만 어떤 색깔인지는 모른다.
일본 유학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호랑이는 가죽을 사람은 이름 세 글자를 남겨야 한다 생각했다. 효성 여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에 갔는데 솔직하게 배울게 하나도 없더라. 다들 부잣집 딸내미에 이쁜 외모와 사치에만 빠져 나만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있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염색 기법이란 일본 서적을 발견했다. 교수에게 이 책에 대해서 물었지만 자기도 모르니 직접 찾아보고 공부하라더라. 그래서 그날부터 바로 일본어 독학부터 일본 문화와 대학정보 혼자 자료를 조사한 후 교토에 있는 경도대학에 유학을 떠났다.
교토에서의 공부는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당시 한국의 자본 문화와 달리 선입견 없는 인간애와 자연에 기반에 초점을 둔 주변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일본 자국민도 힘든 교수직을 두 개의 대학에서 임명해 주었고 타국의 예술가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었다. 얼마나 만족하고 좋았으면 23년 동안이나 살았겠나.
스타일에 일관성이 뚜렷하다
옷에 대한 관념이 매우 강하다. 상대방을 우대하기에 항상 365일 깨끗하게 나간다. 내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차려입었습니다.'라는 마음가짐, 일종의 예의다.
레이 가와쿠보의 이미지가 보인다
카리스마가 있어 보인다고 종종 들었다. 꼼데가르송보다 오늘도 입고 왔지만 이세이 미야케를 좋아한다.
다시 유행하는 현대의 미니멀리즘에 당신도 관통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블랙과 화이트 이외에 불교에 정신도 들어가기 때문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선을 사용한 젊은 입체 그래픽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를 해도 좋지 않나
좋지. 멋진 작업이라면 당연히 해야지.
대신 프로그램 기술에 의존하는 작업자는 사양한다.
소장 중인 미술작품들을 보니 대단하신 분들도 많던데
친 언니가 수집을 해서 1940년대 스케치 작품부터 엄청 많지. 이배 선생님이나 이우환 선생님 작품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수천수억의 가치들이지.
이우환 선생은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유작 12 앨범 자켓을 선물했다. 연락도 가끔하는가
세계적인 거장이신 분이라 바빠서 오랫동안 못 만났다. 아마 10년 전쯤이 마지막 만남이었던 거 같다.
이외에 다른 취미나 수집을 하는가
가방을 정말 좋아한다. 그외에 구두, 스카프, 안경 정도.
안경을 선호하는가
안경에 대해서 욕심이 많다. 매체와 인터뷰할 때나 개인 작업할 때 어떻게 보면 굳이 쓸모없지만 내가 보이는 모습이라든지 작업하는 그 날의 기분이든 확실히 바뀌더라. 프랑스 파리에서도 7년 살았는데 워낙 특이한 사람들이 많은 도시라서 비싼 안경들 마저 특이하고 있어 보이더라.
가느다란 선 작업을 하루 12시간 정도 집중을 하다 보면 눈이 나쁠 만도 한데
아직은 돋보기 써본 적이 없다. 시력은 유전적으로 타고났다.
앞으로의 행보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새로운 작업을 할 계획이다.